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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그릇론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다.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건 가능한 일이다.

그릇에 좋은 흙을 담아 좋은 씨를 심고 양지 바른 곳에 놓아 알맞게 물을 주면 잘 자라 열매 맺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나무는 좁은 그릇 혹은 화분에 심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 많은 흙, 더 많은 양분을 담을 수 있는 더 넓은 그릇에 심겨져야 한다.

그래서 처음 심었을 때는 화분에 심어 집 안에서 키우다가도 어느 정도 크면 밖에다 심어야 한다. 

결국은 그릇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말로 지겹도록 지지고 볶고 산다는 말이 있다. 영어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지지고 볶고 사는 건 결국 성품 문제가 아니라 그릇 문제이다.

그릇을 깨끗히 하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담는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그릇이 작기 때문에 작은 공간에서 지지고 볶고 산다.

문제는 자신의 그릇을 넓힌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거다.

그래서 항상 삶이 그 상태일 수 밖에 없다. 무언가 잘 살려고 노력해봐도, 제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해봐도 항상 그 자리이다.

그릇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지 언정 스스로 자신의 그릇을 키운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야베스가 한 기도가 그래서 성경에 기록될 만한 거다.

자신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경이 넓어지기 위해선 매일 자신의 한계를 발견해야 하는 건데,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는 일은 매일 훈련하는 운동선수들이나 하는 일이다.

운동선수들처럼 자기 자신을 훈련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운동선수들 또한 그 훈련기간이 정해져 있다. 선수로 뛸 수 있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는 훈련 또한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놓고 보면 잠깐인 것이다.

야베스가 그렇게 기도한 것은 매일 자신의 삶을 훈련시켰다는 얘기다. 단지 기도만 한게 아니라는 거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 속에서 한계를 발견하게 하셨고 그 그릇을 크게 하셨다는 거다. 이게 어찌 만만한 일인가.


오순절 운동이 끼친 긍정적인 영향 한 가지는 그릇을 키우게 부르짖도록 가르쳤던 것이다.

어찌됐건 작은 그릇이 큰 그릇이 되도록 부르짖게 훈련시킨 것이다. 

물론 그릇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 메시지는 부르짖지 않았지만 말이다.

생각 보다 작은 그릇이었음을 깨닫는 연초, 큰 그릇이 되도록 부르짖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된다.

그냥 내 그릇에서 만족하면 안되는 걸까. 이 작은 그릇도 깨끗하게 유지하기 어려운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