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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듣는 것과 깨달음의 사이


"우리 사촌형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어."

시노부가 침착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설교하겟다고 했지만, 언제나처럼 담백한 어조는 변함이 없다.

"옛날부터 초등학교 선생님을 지망했거든. 원래 그림책이나 아동문학을 좋아했어. 그래서 전부터 종종 우리 집에도

추천도서를 갖고 오곤 했지. 그러나 난 소설이니 판타지니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거의 읽지 않았어. 누나들은

잘 읽었지만, 그런데 최근 어쩌다 심심풀이로 누나 책장에 있는 책을 읽었어. [나니아 연대기]라고 하는,

완전 딴 세상의 판타지였는데."

"흐음."

"읽은 적 있냐?"

"없어, 나도 별로 책을 읽지 않아서."

"그러냐. 뭐, 내용 설명은 넘어갈게. 몇 권이나 돼. 시리즈물이라서. 한가하기도 하고 끝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일단 마지막까지 읽었어."

"어떻게 되었는데?"

"그건 이 이야기와 관계없으니까 패스. 원한다면 빌려줄 테니 읽어봐. 그래서 마지막까지 다 읽었을 때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가 하면, 어쨌든 머리에 떠오른 것은 '아뿔싸' 하는 말이었어."

"아뿔싸?"

"응, '아뿔싸, 타이밍이 늦었다'.야. 어째서 이 책을 좀더 옛날, 초등학교 때 읽지 않았을까 몹시 후회했어.

적어도 중학생 때에라도 읽었더라면, 10대의 첫머리에서 읽어두어야 했어. 그랬더라면 분명 이 책은

정말 소중한 책이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해 뭔가가 되어 주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분해서

견딜 수가 없어졌어. 사촌형은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주었던 게 아니었어. 우리 남매의 나이며 흥미 대상을

생각해서, 그때에 어울리는 책을 골라주었던 거야. 사촌형이 책을 주었을 때 바로 읽었더라면,

사촌형이 골라준 차례대로 순순히 읽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그만큼 분했던 일은 최근에 없었던 것 같아."

"오."

도오루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시노부는 과거의 일에 연연하지 않는 타입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이지, 타이밍이야."

시노부는 나직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네가 빨리 훌륭한 어른이 되어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싶다. 홀로서기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건

잘 알아. 굳이 잡음을 차단하고 얼른 계단을 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아프리만큼 알지만 말이야.

물론 너의 그런 점, 나는 존경하기도 해. 하지만 잡음 역시 너를 만드는 거야. 잡음은 시끄럽지만 역시 들어두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네게는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이 잡음이 들리는 건 지금뿐이니까

나중에 테이프를 되감아 들으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들리지 않아. 너, 언젠가 분명히 그때 들어두었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해."


온다 리쿠. 밤의 피크닉. 중에서


인생에서 꼭 필요한 '계시'는 항상 적절한 시기에 찾아 오지만,

그것이 '계시'였음을 깨닫는 건 대부분 이미 늦었을 때가 많다.

그래서 누구의 말이든 경청하는 삶의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계시'는 예배시간에만, 높은 사람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극히 작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가족 중에서 선지자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청은 훈련이 되어져야 한다.

그 사람이 누구든 쉽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무시하기 쉬운 우리가 계시를 알아볼리 만무하고

그저 항상 귀담아 듣는 훈련 만이 우리를 만시지탄에서 구해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