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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라라

[리뷰]가을방학 - 인기 있는 남자애


인기 있는 남자애 - 가을방학

어렸을 때 넌 재미있고 시끄러운 아이였고
남자애들 사이에선 꽤 인기가 있었지
하지만 한번도 반장은 해 본 적이 없었어
여자애들을 널 찍어주지 않았으니까

하루는 녀석들이랑 뛰어다니고 놀다가
실수로 네 가방을 '퍽'하고 밟아 버렸지
꽉 찬 가방 속엔 교과서, 공책 등과 함께
뜯지 않은 우유팩 하나가 들어 있었지

넌 오직 남자애들한테만 인기 있는 남자애였고
우유팩이 터졌을 때 걔들은 그냥 멍청히 보고만 있었지
재빨리 책들부터 꺼내서 털고 닦고 가방까지 씻어다 준 건
그 전엔 단 한마디도 너랑 해본 적 없었던 한 여자애였어

그 앤 작고 조용하고 안경을 낀 아이였지
걔가 널 왜 도와줬는지 넌 잘 모르겠지
혹시 널 짝사랑한 걸까? 그건 아닐거야 넌
남자애들한테만 인기있었으니까

넌 오직 남자애들한테만 인기 있는 남자애였고
우유팩이 터졌을 때 걔들은 그냥 멍청히 보고만 있었지
어찌 할 줄 모르던 널 도와준 그 애한테 고맙단 인사도 못한 너
그 아이의 이름도 잊어버렸다며 넌 지금 뭐가 좋아서 웃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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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언니네 이발관 출신 정바비와 브로콜리 너마저 출신 보컬리스트 계피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듀오 가을방학의 가을방학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

의뭉스러운 가사가 정말 재미있다.


초등학생 때 좋아했던 남자애.

남자애들한테만 인기있었던 그 남자애는 여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 반장이 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여자애들이 좋아하지 않는 그 애를 나는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남자애랑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애들이 놀다가 그 남자애 가방을 발로 밟았고 그만 가방 안에 있는 우유팩이 터지고 말았다.

멍청한 모든 남자애들이(그 나이엔 남자애들은 대부분 다 멍청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에

나는 용기를 내어 그 남자애의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서 다 털고 가방까지 다 씻어다 주었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했던 일이지만 그 후에도 무던하고도 멍. 청. 한. 그 남자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관계는 아무 진전이 없었고 세월이 흘렀다.

이젠 어른이 되어 동창회에서 만난 그 남자애에게 조심스럽게 그 때의 그 일을 물어 본다.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걸 다행히라고 해야 하나.

어른이 된 그 남자애는 자신을 도와줬던 그 여자애의 이름 조차 기억조차 못하고 있다.

작고 조용하고 안경을 낀 지금은 자신 앞에 있는 나와 그 여자애와 동일인물인 줄도 모른채

바보같이 웃고만 있다.


굳이 풀어 쓰자면 위에 쓴 내용이라고 할까.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한 자존심에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감정조차 부인하고 마는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고 답답해하고 속상해 하는 마음이 귀엽다.


계피의 보컬과 정바비가 프로듀싱한 음악이 정말 잘 어울리는 음반이다.

다음 앨범이 벌써 기대되고, 다음 앨범도 좋으면 한국의 She & Him 이라 부르며 좋아해줄 참이다.